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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9 [단편] 파렴치한 도둑질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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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거? 이거 같은거 아냐? 이거 대체 누가 베낀거야?”
 
제목은 틀리다. 그러나 어미변화, 조사도 거의 일치하는 글. 분명 같은  글이다.
 
만년 김과장은, 올해도 어김없이, 신인문학상에 접수된 글을 일차로 걸러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을 맡게 되었다. 해가 가면 갈수록 ‘읽을 만한 글이 없구나’라고 한탄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명색이 5대 일간지중에 하나인데, 신인 문학상을 없앨수도 없는 노릇. 오며, 가며, 지하철에서도,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도, 볼일 보는 화장실에서도 읽어내야만 하는 것을. 그러던 중 발견된 글이었다.
 
“흐흠. 이거 꽤 괜찮은데?”
 
그래서 이대리에게도 읽어보라 했던 글이었다. 그래서 기대했던 반응, “김과장님, 이거 진짜 괜찮은데요?” 란 평가를 이끌어 낸 작품이 아닌가? 그게 바로 오전의 일. 그런데 그 오후에 제목은 다르지만, 내용과 문체까지 같은 글을 또 읽은 것이다.
 
“이거 외국 작품을 둘이 동시에 베낀거 아닌가요?”
 
“외국작품 베꼈다고 하기엔 너무 한국적인데, 그리고 그렇게 외국 작품 베끼더라도 이렇게 거의 조사까지 똑같이 베낄수 있겠어? 이것 참.”
 
“과장님, 아무래도 둘중 하나가 베낀것 같은데요? 에고. 아깝네. 괜찮은 글인데. 원래 누가 썼는지는 몰라도 아쉽게 되었네요.”
 
표절 시비가 붙을만한 글은 일단 탈락 시키는 것이 상책. 하지만 김과장은 왠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이대리, 이거 좀 아쉬운데. 한번 홍평한테 보여보자고. 연락해봐.”
 
 
**
 
“세상에. 이거 상당히 경쟁력 있는 글인데요? 참신해요, 참신해. 올해엔 괜찮은것 하나 건지셨는데요?”
 
얼마전 라식 수술을 해서인지, 평소보다 더 반짝거리는 눈을 더욱 동그랗게 만들면서 재미난 글을 읽고 난 후의 희열을 갈라진 쉰 목소리로 표현하고 있는 홍평론가에게 김과장이 말했다.
 
“그래? 그럼 이것도 한번 읽어보지.”
 
제목만 틀린 같은 글에 홍평론가가 눈을 맞춘지 3초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뭐야? 이거 똑같은 거네요?” 라는 아까 보다 조금더 쉰듯한 소리가 나왔다.
 
“그렇지? 둘중 한놈이 완전히 베낀거 맞는거 같지?”
 
“아니, 누가 대체 이런 짓을 한거죠? 어떻게 이런 양심 불량인 놈이 글을 쓰겠다고. 이것 참 기분 나쁜데요?”
 
“그래도 이거 원작자만 밝혀지면 상 받을만 하지 않겠어?”
 
“글쎄요. 아주 특출난 작품이 따로 없으면, 가능성이 있어 보이긴 하는데…….”
 
“그렇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홍평을 불렀잖아.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어렵게 원작자를 찾을 필요가 없으니깐, 심사위원인 홍평이 괜찮은 작품같다고 해줘야 내가 좀 알아보기라도 하지.” 
 
“어허, 왜 이러세요. 십년 넘게 문학상 담당하신 분께서, 심사위원인 저보다 한수 위이시면서. 그런데 어떻게 원작자를 찾으시려고요?”
 
“글쎄, 그건 차차 생각해봐야 하겠지만, 이거 뻬낀 놈이 고약해서라도 좀 찾아봐야 할것 같아서. 이 베낀 놈 때문에 원작자가 피해를 보게 하자니 좀 안타까워서.”
 
“그렇긴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라는 말은 속으로 삼키는, 세상을 너무 잘 아는 홍평론가였다.
 
 
***
 
김과장은 나머지 두 심사위원에게도 글을 보였다. 역시나 기대했던 반응. 최소 가작은 될수 있다는 평가. 정말 이제는 원작자를 가려내야 한다. 가장 힘들것 같은 일. 매우 까다로우면서도 번거로운 일. 먼저 출품자 최씨와 고씨, 두명에게 연락해서 따로따로 만나기로 했다.
 
똑같은 글이 출품되어서 원작자를 알아보기 위해서라는 말을 마치자 마자, 최씨와 고씨는 똑같이 황당스러운 마냥, 아니 당황스러운 마냥, 아무튼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를 내면서, 억울해 하면서, 자신의 작품은 자신의 온전한 창작물임을 강조했다. 언제, 왜, 어떻게 그 글을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쓰면서 무슨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둘은 매우 논리적이며, 아주 설득력있게, 그리고 감정을 드러내며 설명했다. 정말로 둘다 진짜 같았다.
 
“이거 둘중에 한명은 분명 거짓말하는 건데, 이거 정말 가려내기 쉽지 않네요. 둘중에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연기자 하면 정말 딱이겠어요.”
 
“이거 포기하는게 나을것 같습니다. 시상 하더라도 나중에 소송걸리고 하면 좀 골치아프지 않겠습니까?”
 
이대리와 홍평론가는 슬슬 포기하는 눈치였다.
 
“아니야. 그래도 찾아야해.”
 
김과장은 자신이 마치 원작자인양, 두 눈에 벌겋게 핏줄이 설 정도로 힘을 주면서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래전 잊고 있었던 놈에게 당한 배신감이 되살아났다. 김과장의 사랑의 편지들을 짝사랑 하던 여자에게 대신 전해주던 고등학교때 친구라 생각했던 놈. 나중에 알고보니, 이름을 바꿔 자신이 쓴것 마냥 속이고, 결국 그 여자와 사귀었던 그 도둑놈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여자를 빼앗겼기 때문이 아닌, 자신의 글을 빼앗겼을때의 그 배심감이.
 
“남의 것을 지것인양 이렇게 뻔뻔스럽게 거짓말하는 놈들은 꼭 찾아서 싹을 말려야 해.”
 
김과장은 글을 쓴다는 놈이 눈빛하나 떨리지 않고 그렇게 너무나도 진실되 보이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울컥울컥 홧덩이가 치솟았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김과장의 몫이었다. 문화부의 최고참인 박부장은 이 일을 없던 일로 하게 하였다.
 
 
****
 
3개월전, 글로 인기몰이를 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최씨와 고씨는 언제나처럼 인터넷 서핑 중이었다. 그러다가 둘은 하루 차이로 홈피를 하나 발견하였다. 지난 한달간 방문객 4명. 주인장의 이름은 ‘거짓글쟁이’. 주인장의 핸드폰 번호와 한개의 글이 전부인 홈피. 하지만 방문객이 거의 없는 그곳에서 발견한 그 단 한개의 글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이틀후 그 홈피는 아예 사라져 버렸다. 최씨과 고씨는 그 홈피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알아낸 사실. 서버 사용비가 미지급되어서 폐쇄. 복구의 가능성은 제로. 그리고 홈피주인은 현재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고, 친구도 없는 고아였다는 사실까지.

 
 

 
 

덧.

2006년도 싸이의 페이퍼라는 것을 잠시 했을때, 제가 쓴 픽션입니다. 

요즘 저작권 사용료 문제로 대여점과 만화출판사와의 힘겨루기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냥 원작자의 마음을 조금 헤아려주는 그런 문화가 좀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램에 그때의 글을 다시 이곳에 올리게 되었네요.

저작권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가 깊고, 원작자의 권리를 법뿐만이 아닌 상식적으로도 인정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대여점이란 상상 할수도 없는 불법 사업장이지만, 한국은 글쎄요... 쩝...

원작자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있을때, 훌륭한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올수 있겠지요. 그것이 만화가 되었든, 소설이 되었든, 혹은 음악, 영화, 드라마가 되었든지. 중간유통업자들만 배불리는 지금의 문화컨텐츠 유통구조도 좀 바뀌어야 하겠지만, 만들이들의 수고를 좀 알아주고 댓가도 지불할줄 알고, 그들의 창작물에 고마워하는 그런 문화가 좀더 깊어지길 바래봅니다.

뭐 아시겠지만, 불펌은 절대 금지입니다. 펌할 정도로 훌륭하지도 않잖아요?
Posted by 지니프롬더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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