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야 이거? 이거 같은거 아냐? 이거 대체 누가 베낀거야?”
 
제목은 틀리다. 그러나 어미변화, 조사도 거의 일치하는 글. 분명 같은  글이다.
 
만년 김과장은, 올해도 어김없이, 신인문학상에 접수된 글을 일차로 걸러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을 맡게 되었다. 해가 가면 갈수록 ‘읽을 만한 글이 없구나’라고 한탄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명색이 5대 일간지중에 하나인데, 신인 문학상을 없앨수도 없는 노릇. 오며, 가며, 지하철에서도,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도, 볼일 보는 화장실에서도 읽어내야만 하는 것을. 그러던 중 발견된 글이었다.
 
“흐흠. 이거 꽤 괜찮은데?”
 
그래서 이대리에게도 읽어보라 했던 글이었다. 그래서 기대했던 반응, “김과장님, 이거 진짜 괜찮은데요?” 란 평가를 이끌어 낸 작품이 아닌가? 그게 바로 오전의 일. 그런데 그 오후에 제목은 다르지만, 내용과 문체까지 같은 글을 또 읽은 것이다.
 
“이거 외국 작품을 둘이 동시에 베낀거 아닌가요?”
 
“외국작품 베꼈다고 하기엔 너무 한국적인데, 그리고 그렇게 외국 작품 베끼더라도 이렇게 거의 조사까지 똑같이 베낄수 있겠어? 이것 참.”
 
“과장님, 아무래도 둘중 하나가 베낀것 같은데요? 에고. 아깝네. 괜찮은 글인데. 원래 누가 썼는지는 몰라도 아쉽게 되었네요.”
 
표절 시비가 붙을만한 글은 일단 탈락 시키는 것이 상책. 하지만 김과장은 왠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이대리, 이거 좀 아쉬운데. 한번 홍평한테 보여보자고. 연락해봐.”
 
 
**
 
“세상에. 이거 상당히 경쟁력 있는 글인데요? 참신해요, 참신해. 올해엔 괜찮은것 하나 건지셨는데요?”
 
얼마전 라식 수술을 해서인지, 평소보다 더 반짝거리는 눈을 더욱 동그랗게 만들면서 재미난 글을 읽고 난 후의 희열을 갈라진 쉰 목소리로 표현하고 있는 홍평론가에게 김과장이 말했다.
 
“그래? 그럼 이것도 한번 읽어보지.”
 
제목만 틀린 같은 글에 홍평론가가 눈을 맞춘지 3초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뭐야? 이거 똑같은 거네요?” 라는 아까 보다 조금더 쉰듯한 소리가 나왔다.
 
“그렇지? 둘중 한놈이 완전히 베낀거 맞는거 같지?”
 
“아니, 누가 대체 이런 짓을 한거죠? 어떻게 이런 양심 불량인 놈이 글을 쓰겠다고. 이것 참 기분 나쁜데요?”
 
“그래도 이거 원작자만 밝혀지면 상 받을만 하지 않겠어?”
 
“글쎄요. 아주 특출난 작품이 따로 없으면, 가능성이 있어 보이긴 하는데…….”
 
“그렇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홍평을 불렀잖아.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어렵게 원작자를 찾을 필요가 없으니깐, 심사위원인 홍평이 괜찮은 작품같다고 해줘야 내가 좀 알아보기라도 하지.” 
 
“어허, 왜 이러세요. 십년 넘게 문학상 담당하신 분께서, 심사위원인 저보다 한수 위이시면서. 그런데 어떻게 원작자를 찾으시려고요?”
 
“글쎄, 그건 차차 생각해봐야 하겠지만, 이거 뻬낀 놈이 고약해서라도 좀 찾아봐야 할것 같아서. 이 베낀 놈 때문에 원작자가 피해를 보게 하자니 좀 안타까워서.”
 
“그렇긴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라는 말은 속으로 삼키는, 세상을 너무 잘 아는 홍평론가였다.
 
 
***
 
김과장은 나머지 두 심사위원에게도 글을 보였다. 역시나 기대했던 반응. 최소 가작은 될수 있다는 평가. 정말 이제는 원작자를 가려내야 한다. 가장 힘들것 같은 일. 매우 까다로우면서도 번거로운 일. 먼저 출품자 최씨와 고씨, 두명에게 연락해서 따로따로 만나기로 했다.
 
똑같은 글이 출품되어서 원작자를 알아보기 위해서라는 말을 마치자 마자, 최씨와 고씨는 똑같이 황당스러운 마냥, 아니 당황스러운 마냥, 아무튼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를 내면서, 억울해 하면서, 자신의 작품은 자신의 온전한 창작물임을 강조했다. 언제, 왜, 어떻게 그 글을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쓰면서 무슨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둘은 매우 논리적이며, 아주 설득력있게, 그리고 감정을 드러내며 설명했다. 정말로 둘다 진짜 같았다.
 
“이거 둘중에 한명은 분명 거짓말하는 건데, 이거 정말 가려내기 쉽지 않네요. 둘중에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연기자 하면 정말 딱이겠어요.”
 
“이거 포기하는게 나을것 같습니다. 시상 하더라도 나중에 소송걸리고 하면 좀 골치아프지 않겠습니까?”
 
이대리와 홍평론가는 슬슬 포기하는 눈치였다.
 
“아니야. 그래도 찾아야해.”
 
김과장은 자신이 마치 원작자인양, 두 눈에 벌겋게 핏줄이 설 정도로 힘을 주면서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래전 잊고 있었던 놈에게 당한 배신감이 되살아났다. 김과장의 사랑의 편지들을 짝사랑 하던 여자에게 대신 전해주던 고등학교때 친구라 생각했던 놈. 나중에 알고보니, 이름을 바꿔 자신이 쓴것 마냥 속이고, 결국 그 여자와 사귀었던 그 도둑놈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여자를 빼앗겼기 때문이 아닌, 자신의 글을 빼앗겼을때의 그 배심감이.
 
“남의 것을 지것인양 이렇게 뻔뻔스럽게 거짓말하는 놈들은 꼭 찾아서 싹을 말려야 해.”
 
김과장은 글을 쓴다는 놈이 눈빛하나 떨리지 않고 그렇게 너무나도 진실되 보이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울컥울컥 홧덩이가 치솟았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김과장의 몫이었다. 문화부의 최고참인 박부장은 이 일을 없던 일로 하게 하였다.
 
 
****
 
3개월전, 글로 인기몰이를 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최씨와 고씨는 언제나처럼 인터넷 서핑 중이었다. 그러다가 둘은 하루 차이로 홈피를 하나 발견하였다. 지난 한달간 방문객 4명. 주인장의 이름은 ‘거짓글쟁이’. 주인장의 핸드폰 번호와 한개의 글이 전부인 홈피. 하지만 방문객이 거의 없는 그곳에서 발견한 그 단 한개의 글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이틀후 그 홈피는 아예 사라져 버렸다. 최씨과 고씨는 그 홈피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알아낸 사실. 서버 사용비가 미지급되어서 폐쇄. 복구의 가능성은 제로. 그리고 홈피주인은 현재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고, 친구도 없는 고아였다는 사실까지.

 
 

 
 

덧.

2006년도 싸이의 페이퍼라는 것을 잠시 했을때, 제가 쓴 픽션입니다. 

요즘 저작권 사용료 문제로 대여점과 만화출판사와의 힘겨루기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냥 원작자의 마음을 조금 헤아려주는 그런 문화가 좀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램에 그때의 글을 다시 이곳에 올리게 되었네요.

저작권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가 깊고, 원작자의 권리를 법뿐만이 아닌 상식적으로도 인정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대여점이란 상상 할수도 없는 불법 사업장이지만, 한국은 글쎄요... 쩝...

원작자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있을때, 훌륭한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올수 있겠지요. 그것이 만화가 되었든, 소설이 되었든, 혹은 음악, 영화, 드라마가 되었든지. 중간유통업자들만 배불리는 지금의 문화컨텐츠 유통구조도 좀 바뀌어야 하겠지만, 만들이들의 수고를 좀 알아주고 댓가도 지불할줄 알고, 그들의 창작물에 고마워하는 그런 문화가 좀더 깊어지길 바래봅니다.

뭐 아시겠지만, 불펌은 절대 금지입니다. 펌할 정도로 훌륭하지도 않잖아요?
Posted by 지니프롬더바를
,
97년도 봄. K대 야외공연장을 찾은 것은 자유콘서트 때문이었다.
한학번 후배들과 함께 공연장을 꽈악 채운 또래의 인간들과 3시간을 방방 거리며 소리치며 내달렸던, 아직도 잊지못할 그 공연. 물론 다음날 온 몸이 쑤셨고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었다...
암튼 그 공연에서 윤도현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당시 최고의 인기밴드인 넥스트며, 최고의 보컬이었던 리아. 등등 인기 뮤지션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최고의 공연을 보여준건 윤도현 밴드였다.(적어도 내겐. 물론 다들 멋졌었지만.) 
익숙치 않은 처음 듣는 노래였음에도 불구하고, 윤밴이 그날 보여준 공연은 내 머리를 띵하게 때렸고, 결국 그날 저녁에 그들의 2집 앨범을 구입하고야 말았었다. 
그날 공연에서 들었던 것은 아마도 "이땅에 살기 위하여"와 "하루살이"였던것 같은데(기억이 가물가물-,-;;) 강한 락 사운드와 비판의식 철철 묻어나는 그 가사덕에 그날 공연장은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였고, 후에 집에서 그 앨범을 들으면서도 그 공연장에서의 흥분이 되살아나, 참지를 못하고 사운드 빵빵하게 즐겼던 생각이 난다.
20대 초반의 흥분과 열정, 왠지모를 치기의 감성이 즐기기에는 참으로 적당한 앨범이었었다.   

                                             (한동안 열심히 들었었던 윤밴의 2집 앨범)

내가 사준 그 앨범 덕이었는지(-.-;;), 그 이후로 점점 승승장구해 가면서 국민밴드라는 애칭으로 불릴만큼 그들의 인기는 날로 더해졌고, 종종 그들의 정치발언 덕에 가끔은 이슈의 중심이 되기도 하는 그들을 지켜보는 건 꽤나 흥미진진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이 그들의 본업인 음악으로 되돌아 왔는데에도 불구라고, 이슈의 중심에 서있는 것 같다. 왜냐고? 음악에 정치색이 가득하다고 비판하는 다구리들의 못난 질투 때문이랄까?

원래 윤밴은 까대는 가사 가득한 그런 락 음악을 하던 밴드였다. 그들의 97년에 내놓은 2집앨범만 봐도 사운드 곱디 고운 그런 음악이 아니라, 전자기타의 쨍쨍거림과 팡팡 터지는 드럼소리, 그리고 강한 비트의 사운드 자체가 반항스러운(?) 음악을 하던 "락" 밴드이다. 거기에다가 가사들은 하나같이 어찌나 "락"스러운지, 가사를 읽어보면 그들의 불평불만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이야기 해도 노래가 된다는게 신기할 정도이다. 

이런 윤밴이 이번에 내놓았다는 앨범을 조금 들어보니, 뭐 2집이랑 비교하니 별반 더 크게 까대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들 난리인가 싶다. 

97년에도 똑같이 했었는데, 그때는 별말 없더니, 왜 지금에 와서 그렇게 난리들인지... 그때는 인기없는 무명이고 지금은 대중적 인기있는 유명밴드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음악을 하면 안된다고 난리치는 사람들이 좀 있는 것 같은데, 도통 나는 이해불가능한 그들의 논리이다. 왜 음악으로 정치이야기 하면 안된다고 못박는 것인지, 그래가지고서야 어디 우리나라에서 자유롭게 정치이야기 할수 있는 데가 있을까? 정치는 모든 삶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인데, 그걸 모르고 그렇게 떠들어대는 그들의 좁은 생각에 기가 막힐 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윤밴 말고도 많은 이들이 정치이야기 더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들이 정치이야기 할때, 그곳이 연예계가 되었든 아니든, '아 재는 저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쿨하게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번쯤 왜 저렇게 이야기 할까 진지하게 생각도 해보고 말이다. 

아무튼, 이번 윤밴의 "공존" 대 히트하길 기대한다. 개인적으로 "깃발" 참 맘에 들더이다.


덧.

포스팅 기념으로 간만에 들어본 윤밴2집. 좋구나 좋아. 그래 너흰 이런음악 해줄때가 참 좋았어. 고로 이번 새 앨범도 질러볼까 싶구나. 히힛. 

Posted by 지니프롬더바를
,
전두환정권이 매진했던 Three "S" 정책이 요즘들어 그 효과를 확실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삼 S 정책이 뭔지 모를 분들을 위해 조금 설명하자면 정권세력에 대한 관심과 염려를 분산시키기 위해 다른 쪽으로 국민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정책인데, 그 다른 쪽이라는 게 세가지 S인 "Sport" "Screen" "Sex" 산업이다.
이 세가지 "S"를 키우면 대중들은 그 "S"에 열광해서 정작 관심가지고 지켜봐야할 정권의 비리 혹은 잘못한 점은 그냥 몰라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요즘처럼 정권의 행보가 어이없고, 답답했던 적이 또 있었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정권에 대한 관심과 염려 혹은 기대는 완전 기대 이하이다.

오로지 국민들이 관심가지고 있는 것은 WBC와 김연아 우승, 그리고 탈많은 드라마 이야기들 뿐이고, 이제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묘한 성적매력을 발산하는 아이돌 스타들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대화 중심에 있다. 

이처럼 삼S 정책이 훌륭하게 그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삶이 힘들고 답은 보이지 않을때 일수록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스포츠와 드라마, 그리고 스타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심리. 뭐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WBC보면서 긴장하고 약간 아쉬워 했고, 김연아 선수에게 환호했으며, 욕하면서도 드라마 다 챙겨 보고, 아이돌 보며 이쁘네 좋네 연발하고 있으니깐

그래도 내 삶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정치세력에 대해 조금은 더 관심을 보여야 할것 같다. 비록 보고 있기에 너무 괴로워 피하고 싶은 강한 충동이 들더라도, 그래야 약간은 보기에 덜 괴로운 정치세력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을 가져본다.


Posted by 지니프롬더바를
,